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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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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투이스라엘(B2IL)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이어주고 하나님이 이 땅에 역사하심을 보면서 열방을 향한 뜻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함께 배우면서 알아갑니다. 저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과 열방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기도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세우신 민족인 이스라엘을 통해 지금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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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투이스라엘 12월소식- 모든 것이 은혜였다

샬롬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메시지 그리고 새해인사를 미리 이스라엘에서 문안 드립니다. 벌써 2025년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이후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소식들과 변화도 많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으며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흐리고 있습니다. 저희 네게브 예배 공동체도 이 은혜의 가운데 있습니다. 지난 3달 동안의 소식과 은혜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면서 나누는 식탁의 교재
매년마다 저희는 공동체의 유학생들과 지역 이웃들을 초청하여 초막절, 그리고 하누카 겸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모임을 갖습니다. 먼 타향까지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이제 찾아오는 이 없이 홀로 있을 수도 있는 이들을 초대하여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초막절과 크리스마스, 유대인의 전통적인 절기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속에서 다시 오실 주님의 임재를 소망하면서 은혜를 나누고 함께 저녁식사를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절기 저녁식사 때마다 40명이 넘는 인원들이 저희 집에 모였습니다. 각자가 나눌 음식들을 가져오고 저희도 힘껏 음식을 준비해서 모두가 풍성히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 매년 절기때마다 40명이 넘는 식사 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언제나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해 주십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유월절부터 시작하여 하누카,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총 200명의 사람들과 식탁을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에 비해서는 조촐한 인원이지만 이 네게브 작은 마을에서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동역자 분들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계속 이와 같은 섬김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광야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과 경배
매년 10월 중순이 되면 이스라엘 대학의 학기들이 시작을 합니다. 특히 광야에 자리잡은 연구소들은 더욱 늦게 학생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공동체는 매년 학기가 시작하기 전 유학생들과 함께 새 학기 시작을 위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광야 가까이에 자리잡은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올해도 광야에서 드리는 “2025 Desert Worship Night”를 진행하였습니다. 올해에는 특별히 “독수리처럼 사슴처럼 주를 바라라”라는 주제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가 예배를 준비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큰 즐거움과 함께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저희는 음식을 준비하고 예배를 지원하는 섬김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왜 예배인도를 안하냐 물으시면서 주방 앞치마를 두른 저를 의아하게 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도 귀한 사역의 자리이며 누구나 하기 어려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야 말로 제 자리라고 생각하기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의 소리는 그 자리에 있었던 학생들 만이 아니라 함께 참여했던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여행객들 그리고 지역 믿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맛보게 하는 성령의 임재의 자리였습니다. 정말 기회가 되면 우리 중보자 분들도 함께 그 자리에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네게브를 변화시키는 중보의 시간
매주 화요일 오전 저희 집 거실은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자리가 됩니다. 일년 전부터 시작된 화요 중보기도 모임이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현지 유대인들의 필요로 시작된 아침 기도회가 어느 덧 이 곳을 방문한 이들도 꼭 참석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곳 시골의 작은 마을에 몇 안되는 믿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함께 이스라엘과 열방을 위한 중보의 시간을 갖습니다. 작은 이 마을에 몇 안되는 믿은 가정들이지만 함께 기도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크고 강합니다. 저희 마을에는 종종 다른 지역에서 온 손님들이나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 머물다 가시고는 합니다. 그 분들도 어김없이 이 화요 기도 모임에 참여하시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다녀가시는 분들은 이 곳에 임재한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를 받고 다시금 오고 싶다고 고백하시도 합니다.

저희는 비록 작은 숫자이지만 저희의 기도와 헌신이 이 마을을 변화시키고 이곳이 네게브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의 유대인 가정들을 위해서 그리고 마을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이스라엘
지난 12월 초에는 이스라엘에 베이런이라는 태풍이 왔었습니다. 이 태풍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유래없는 홍수와 침수 피혜가 있었고 집도 없이 천막을 치고 살던 가자지구의 피난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번 태풍으로 인해 3년 가까이 있었던 가뭄이 많이 해소된 것입니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때아닌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메말랐던 네게브와 농장들은 넘치는 물로 인해서 다음 시즌을 위한 농사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불어난 물로 인해서 생긴 강들과 폭포들을 찍어서 각종 SNS에는 오랜만에 시원한 폭포와 넘치는 물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때 아닌 홍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피난민들도 이스라엘에서 제공하는 구호품들과 도움으로 어려움들을 해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어느 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잡혀 있던 인질들과 억류되었던 시신들 중 1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돌아오게 되었고 평화조약은 이제 2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과 테러의 야욕에 잡혀 있는 하마스는 가자지구 시민들을 인질삼아 서방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북쪽의 헤즈볼라도 재무장을 하면서 호시탐탐 이스라엘 북부를 노리고 있고 시리아의 무장세력들은 시리아 정부와는 노선을 달리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방하고 공격하려는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중에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그리고 시리아의 무장 세력을 지지하면서 여전히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의 최후의 보루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비단 군사적 부분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이스라엘은 악한 이슬람의 세력으로부터 기독교와 서방세계를 지켜내고 있는 담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없으면 평화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스라엘이 없다면 진짜 혼돈이 올 수 밖에 없음을 알리고 있지만 평화라는 단어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너무나 큰 걸림돌 일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두신 거친 돌인다. 이 돌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은 이 돌을 탓하겠지만 건축자의 버린 돌이 결국 모든 이들을 구원할 이가 된 것처럼 하나님은 그 목적으로 이스라엘을 이 곳에 붙들고 계십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은 이들의 영혼을 흔들고 열고 계십니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복음에 대한 개방성은 이전 10년전에 비해서 무려 절반 이상에 가까운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많은 메시아닉 교회들과 단체들은 복음에 대해서 문의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눈에 띄는 엄청난 부흥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 곳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어려운 혼돈의 시기에 이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이 때에 예수아를 믿는 이들이 빛과 소망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중보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족 근황
저희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재정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엘리야의 까마귀를 보내주셔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두 아들들은 각각 한국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준이는 이번에 군대에 입대하여 훈련을 잘 마치고 조교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훈련 기간동안 큰 어려움 없이 잘 견뎌 내고 수료하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조교로 복무하는 동안에도 좋은 선임과 많은 가르침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선한 하나님의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예준이는 무사히 예루살렘 음악 아카데미에서 즐거운 학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 경력을 가진 다른 학생들 때문에 잠시 어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한 길에 후회없이 매일 열심히 피아노에 매진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예루살렘 한인교회를 나가면서 시골에서 한인 없이 지냈던 설움과 그리움들을 해소하면서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작 비자가 원활히 해결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지만 조속히 응답이 임하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한 해를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있었고 어렵게 한국을 다녀왔으며 많은 일들을 하면서지내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은혜가 아닌 순간이 없습니다. 통장의 잔고와 손에 남은 것 없는 삶을 보면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순간까지 우리를 낙망케 않으시고 앞서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진정 한 없는 은혜! 더 주시고 많이 주셨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주셨습니다. 우리가 욕심내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시면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들도 이와같은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내가 넘쳐 나기에 감사하는 것보다 내가 없어도 부족해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광야에서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게브 광야에서 김동구 & 남리나 올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시편 121:4
기도제목
- 이스라엘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모든 인질들이 돌아오고 하마스와 헤즈볼라와의 평화협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들이 잠잠하고 내부적으로 정치적 안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더욱 하나님을 갈망하고 종교적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를 발견하고 진정한 복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이들이 앞으로 돌아올 수많은 유대인들을 잘 받아들이고 복음 안에서 제자화가 일어나는 부흥에 준비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새로운 복음의 세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나날이 어두워져 가는 문화 속에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담대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학업과 영혼 그리고 가정을 지켜주시길 기도해 주세요.
- 브릿지투이스라엘이 복음적인 사역을 문을 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재정 그리고 용기를 주시길 기도해 주세요.
- 미드라셋 벤구리온 공동체를 섬기는 저희들에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지혜 그리고 넉넉한 마음을 주셔서 유학생들과 현지 교인들 그리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재정이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희가 매달 지출해야 할 금액이 5백만원이 됩니다. 물가지수가 올라가면서 지출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재정이 충당이 되어서 매달 3백만원의 고정 후원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 저희는 올해도 비자를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준이 비자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조속히 비자가 나와서 학업에 무리가 없고 피아노에 매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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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하누카, 그 절묘한 경계 안에서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가장 큰 절기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메리~ 크리스마스! 바로 “성탄절”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이 가장 큰 겨울 절기이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은-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모두 이 날을 가장 성대하게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요즘 많은 서양 국가들이 특정 종교성을 지닌 행사와 이름을 지양하면서 더이상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안하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라고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그리고 산타클로스는 빠지지 않고 교회 마당에는 네티비티 이야기를 상징하는 동방박사와 말구유의 아기예수가 놓여져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떨까? 유대교의 성지이면서 기독교의 성지인 이스라엘은 유대교 전통이 사회전반을 지배적으로 다스리고 있지만 기독교적 색채를 무시하지 못하고 크리스마스와 유대교의 절기인 하누카를 같이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하누카의 절기와 크리스마스가 묘하게 겹쳐지면서 두 절기간의 묘한 경계와 경쟁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조금 진보적인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누카~(Christmassnukah!-크리스마스와 하누카의 합성어) 혹은 하누카리스마스(Hanucharistmas) 등으로 인사하기도 한다. 보통 메리크리스마스와 해피 하누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hoto by cottonbro studio on Pexels.com 하누카를 어떤 날일까? 성경에는 크리스마스도 하누카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하누카로 이야기 되는 수전절(성전수복인)은 요한복음에 단 한차례 등장한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 요한복음 10:22
이 때 등장하는 수전절이 바로 하누카이다. 하누카는 유대인들이 헬라제국의 통치자 중 한명인 셀로쿠스 왕조에 맞서서 성전을 다시 되찾은 날이다. 일명 마카비 혁명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날은 유대인들이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점령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은 날로 기념한다. 이 날에 다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의 촛대에 불을 밝힌 날로서 “빛의 절기”라고도 불리운다. 이 날은 유대인들이 다시금 자신들의 신앙의 처소를 되찾은 날이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정을 보인 날로 여겨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8일간 지켜지는 이날은 키슬레브 25일(유대력 넷째달, 보통 12월 초순에서 중순에 찾아온다)으로 첫째날부터 총 8일간 하누키아라고 불리우는 촛대에 불을 키게 된다. 매일 하나씩 늘려가는 불을 숫자는 첫 불이 켜지고 난후 다음 거룩한 기름이 준비되기까지 8일의 시간을 상징하며 이는 성전을 되찾은 이후 다시금 거룩한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보통 하누카때 사용되는 촛대는 일반적인 메노라(촛대)와는 다르며 이를 하누키아라고 불리운다.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촛대는 일곱가지를 가지는데 하누키아는 아홉개의 가지를 가지게 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총 8일간 지켜지는 하누카는 총 8개의 불을 밝히는 촛대를 가지고 있지만 가운데 하나는 계속 켜져야 하는 불이다. 즉 가운데 촛대에서 불을 붙여서 나머지 촛대의 불을 밝히게 된다. 그래서 아홉개의 가지를 가지는 메노라를 밝히게 된다.

이 주간에는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들이 있다. 주로 기름에 튀기거나 기름을 사용한 요리를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도너츠이다. 기름에 튀긴 도너츠는 겨울 절기의 별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감자전과 같은 음식을 하고 기름기가 많은 소고기를 가져다가 브리스킷이라는 요리를 해 먹는다. 일면 우리나라로 하면 소고기찜과 같은 요리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기름과 관계된 것들이면 대부분 즐겨 먹는 하누카 음식이 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 하누카, 그런데 성경에 단 한차례 등장하는 이 절기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을까? 억지로 이렇게 저렇게 맞추다 보면 의미야 있겠지만 어거지로 맞추어서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몇가지 그 상징성들을 연결해서 본다면 두 절기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시야를 가지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첫째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는 모두 절박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익히 알지만 크리스마스는 초대 기독교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절기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다른 이방 종교의 신들과는 다른 탄생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안에 있는 약속의 성취이며 상징이라고 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이방신들의 기념일들은 하나님의 탄생하심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탄절이 가지는 그 의미를 드높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어거지식 끼워맞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닌 탄생의 이유가 중요하다고 보면 결국 인간의 죄악을 좌시하지 않았던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죄사함을 위한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신 것이다. 그 분의 오심은 언약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이며 이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게 된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출애굽기 2:23-25출애굽기에 하나님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일하셔서 결국 모세를 선택하고 보내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탄절은 이와 같다고 본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은 만물과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오신 것이다.
하누카는 그런 고통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내딛었던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내어던지고 성전을 지켰던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는 바로 빛되신 예수이다. 하누카가 빛의 절기이다. 그 빛은 성전을 밝히는 것이며 성전의 등은 꺼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등이 껴져 있었다. 이방신들의 제사로 하나님의 빛은 꺼져 있었고 죄악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마카비는 유대인들 자신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에 회개하고 더렵혀진 하나님의 처소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다. 그에게는 빛이 보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향하여 나아갔고 승리할 수 있었다.
목동들은 밤에 천사를 만났고 빛을 만나고 빛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나섰다. 동방박사는 별빛을 따라왔고 결국 별빛의 인도로 왕을 영접하게 된다. 이 두 절기는 하나님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Photo by Martin Mariani on Pexels.com 세번째로 회복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회복을 위함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그분은 철저히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하누카는 회복을 의미한다. 성전의 회복, 예배의 회복, 그리고 헌신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의 회복과 철저한 순종을 향한 회복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지독하리만치 율법에 철저하려고 하였고 정죄하고 비난할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싶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모두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 속에 남아있는 전통 속에서 여전하다. 그리고 그 의미 또한 쉽게 지나치거나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욱 올바른 의미를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오늘 저녁 도너츠 하나 입에 물고 산타가 아닌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껏 웃어보면 좋을 거 같다.

Photo by Tim Douglas on Pexels.com -
12월,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짧은 생각
어느샌가 2022년 한해가 저물었다. 더이상 남은 시간은 2주도 채 안되는 시간. 뒤를 돌아보면 놀라울 따름이고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올 한해는 무척이나 분주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내 자신이 무력한 것을 수차례나 경험한 시간들이었다.

귀한 만남의 시간도 있었고 또 가슴 아픈 헤어짐의 시간도 있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또 잘 아는 누군가와는 더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 자신의 자리가 한 단계 변화되었는가 하면 여전히 부족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빈궁함이 부요함보다 더 많은 시간이었지만 영혼은 언제나 하늘 높이 올려지는 시간이면서 현재를 돌아보며 좌절하고 낙심하는 시간이면서도 아침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도 하였다.
바울의 고백처럼 ” 나는 날마다 죽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할 수 있는 고백은 단 한가지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무한한 그 은혜, 이 자리에 있게 허락하신 그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새로운 해가 되면 갑작스럽게 변화는게 있을까? 물론 그런 것들도 기대하지만 내 심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자고 나면 새로운 하루가 더욱 크고 감사한 은혜로 넘치길 기대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하누카~ So lo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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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넷째주] 그렇게 이끄셨다…
오늘 아주 귀한 모임에 초대되어 갔습니다. 음…초대라기보다는 불려갔다는게 더 맞을거 같네요. 현재 우리는 이스라엘에 있는 단체인 코너스톤이라는 단체에서 비자를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속은 현재 코너스톤인 것이죠. 이 단체는 약 120년 단체로 주도적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 Israel)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모임에 가게 된 것입니다. 불러간 것이지만 정말 잘 불려간 것입니다. 오늘 그 자리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전도자들과 사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호명되어지고 소개되는 단체나 개인들은 모두가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 그리고 팔레스타인들을 향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일들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아직 다 모인 것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더 많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에서 6년을 갓 넘기는 아직은 어린 사역자들입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말 오랫동안 이 땅에서 그리고 한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신 분들과 각자의 특기를 살려서 많은 영역에서 이 땅과 이 민족들을 섬기는 것을 들었을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지식적 사실적인 것들을 전달하는 이들이 있고 또한 복음으로 섬기는 이가 있습니다.

함께 중보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인 사역자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오늘 그 가운데서 특별했던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사하고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낸 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믿는 유대인들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떠도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을뿐 정확한 통계나 자료를 제시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종종 이스라엘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자료에는 오류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인구를 분류할 때 종교적 분류로 인해서 메시아닉 공동체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고 대충 기독교인구수에 얼버무려지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소개된 이 한권의 책은 그동안 목말라 있었던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난 10년(1999년부터 2010년)까지의 조사내용과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까지 다양하게 담고 있었고 각 메시아닉 공동체들이 가지는 특성을 지역별 언어별 등으로 나누어서 세부적으로 조사하고 다루었다는 점에서 괄목한만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어서 읽고 분석해서 앞으로 기도하는 방향성과 또한 이스라엘을 알리고 나누는 것에 있어서 명확한 사실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모임을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하나님이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끄시는 방향을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큰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해사가 해와 별을 관측하여 방향을 잡고 조타수는 지시에 따라서 배를 이리저리 몰고 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처럼 지식이 없는 이들은 그저 똑같은 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것처럼 보입니다. 망망대해는 망망대해니까요. 어디로 가야 맞는 것인지는 오로지 항해사와 조타수만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KRV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운다고 할지라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방향성만큼 잘 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역할 당시 수많은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어떤 행사의 이름만 들어도 이건 어떻게 하면 되겠다라는 일명 “견적”이 나옵니다. 대충 비용도 생각할 수 있구요. 그렇다보니 이스라엘에서 가끔 행사하는 것을 보면 저건 이렇게 하면 될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이렇듯 사람일지라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그것을 가장 좋은 방향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인지를 알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편 23:3 KRV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언제나 우리가 중심이 되다보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안주시는 하나님께 불편함이 생깁니다. 우리가 생각했을때 좋은 방향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십니다. 의의길은 때로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항상 어렵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준은 조악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경험이나 깊이가 조악하기 때문입니다. 80년을 살아도 시간의 너머에 계신 하나님보다 더 깊은 지혜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말은 어찌보면 인간적으로 틀린 말은 없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욥의 고난은 분명 욥이 잘못한 것이 있거나 무언가 하나님께 심판받을 일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은 그런 정의로운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까닭없은 고난은 없다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욥은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은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그러셨으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또한 그리 석연치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친구들의 말을 받아들이자니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지만 그러면서 하나님의 불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욥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다보면 왜 그러셨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기자는 명확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나요?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라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왕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는 시종들을 거지같이 대하겠습니까?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다운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혹은 이끄셨다라는 말에 아직 완성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기에 그 나머지 길들을 이끌려 가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끄셨으니 더 멋진 것이 남았다는 기대감으로 잠시나마 들었던 저의 푸념과 불안이 사그러드는 오늘입니다.

싱글로 이스라엘 라투른 지역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사역하는 브라더 지그프리드는 큰 도전을 주었다 -
[2022년 5월 셋째주] 왜 사는가?
인생을 살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왜 사는가란 질문이다. 왜?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해?
나도 살아가면서 이 질문을 많이 듣고 대답하고 살아왔다. 특히나 신앙인들은 이런 질문을 곧잘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를 묻고 답한다.

정원에 달린 열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란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한 답을 우리는 당연히 알지만 아주 당연하게 여기다보니 쉽게 지나치고 넘어가기 일상이다. 교리문답에 보면 “인간이 지음받은 가장 중요한 목적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답은 명확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고전10:31, 우리말성경)
하지만 우리는 이 당연한 답을 알고 있어도 이 당연한 삶을 살아가지를 못한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모르니 엉뚱하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부딪히던 것이 있다.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그 학업성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있었다. 그들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는 건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고 하지만 학생의 본분은 배움이다. 거기에 학업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신앙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 백성은 나를 찬양하게 하려고 내가 손수 만든 사람들이다. (사43:21, 우리말성경)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려고 우릴 지으셨다고 하신다. 결국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는 존재이다. 그 찬양은 결국 하나님과 관계 안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연애 할 때 상대방이 무엇틀 좋아하는지를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물어보고 알려고 노력한다. 그 가운데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결국 왜 사는가? 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관계하기 위해서 산다” 이다. 그것이 지금 나의 고민이고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