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가장 큰 절기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메리~ 크리스마스! 바로 “성탄절”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이 가장 큰 겨울 절기이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은-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모두 이 날을 가장 성대하게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요즘 많은 서양 국가들이 특정 종교성을 지닌 행사와 이름을 지양하면서 더이상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안하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라고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그리고 산타클로스는 빠지지 않고 교회 마당에는 네티비티 이야기를 상징하는 동방박사와 말구유의 아기예수가 놓여져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떨까? 유대교의 성지이면서 기독교의 성지인 이스라엘은 유대교 전통이 사회전반을 지배적으로 다스리고 있지만 기독교적 색채를 무시하지 못하고 크리스마스와 유대교의 절기인 하누카를 같이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하누카의 절기와 크리스마스가 묘하게 겹쳐지면서 두 절기간의 묘한 경계와 경쟁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조금 진보적인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누카~(Christmassnukah!-크리스마스와 하누카의 합성어) 혹은 하누카리스마스(Hanucharistmas) 등으로 인사하기도 한다. 보통 메리크리스마스와 해피 하누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누카를 어떤 날일까? 성경에는 크리스마스도 하누카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하누카로 이야기 되는 수전절(성전수복인)은 요한복음에 단 한차례 등장한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 요한복음 10:22
이 때 등장하는 수전절이 바로 하누카이다. 하누카는 유대인들이 헬라제국의 통치자 중 한명인 셀로쿠스 왕조에 맞서서 성전을 다시 되찾은 날이다. 일명 마카비 혁명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날은 유대인들이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점령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은 날로 기념한다. 이 날에 다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의 촛대에 불을 밝힌 날로서 “빛의 절기”라고도 불리운다. 이 날은 유대인들이 다시금 자신들의 신앙의 처소를 되찾은 날이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정을 보인 날로 여겨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8일간 지켜지는 이날은 키슬레브 25일(유대력 넷째달, 보통 12월 초순에서 중순에 찾아온다)으로 첫째날부터 총 8일간 하누키아라고 불리우는 촛대에 불을 키게 된다. 매일 하나씩 늘려가는 불을 숫자는 첫 불이 켜지고 난후 다음 거룩한 기름이 준비되기까지 8일의 시간을 상징하며 이는 성전을 되찾은 이후 다시금 거룩한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보통 하누카때 사용되는 촛대는 일반적인 메노라(촛대)와는 다르며 이를 하누키아라고 불리운다.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촛대는 일곱가지를 가지는데 하누키아는 아홉개의 가지를 가지게 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총 8일간 지켜지는 하누카는 총 8개의 불을 밝히는 촛대를 가지고 있지만 가운데 하나는 계속 켜져야 하는 불이다. 즉 가운데 촛대에서 불을 붙여서 나머지 촛대의 불을 밝히게 된다. 그래서 아홉개의 가지를 가지는 메노라를 밝히게 된다.

이 주간에는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들이 있다. 주로 기름에 튀기거나 기름을 사용한 요리를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도너츠이다. 기름에 튀긴 도너츠는 겨울 절기의 별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감자전과 같은 음식을 하고 기름기가 많은 소고기를 가져다가 브리스킷이라는 요리를 해 먹는다. 일면 우리나라로 하면 소고기찜과 같은 요리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기름과 관계된 것들이면 대부분 즐겨 먹는 하누카 음식이 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 하누카, 그런데 성경에 단 한차례 등장하는 이 절기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을까? 억지로 이렇게 저렇게 맞추다 보면 의미야 있겠지만 어거지로 맞추어서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몇가지 그 상징성들을 연결해서 본다면 두 절기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시야를 가지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첫째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는 모두 절박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익히 알지만 크리스마스는 초대 기독교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절기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다른 이방 종교의 신들과는 다른 탄생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안에 있는 약속의 성취이며 상징이라고 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이방신들의 기념일들은 하나님의 탄생하심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탄절이 가지는 그 의미를 드높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어거지식 끼워맞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닌 탄생의 이유가 중요하다고 보면 결국 인간의 죄악을 좌시하지 않았던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죄사함을 위한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신 것이다. 그 분의 오심은 언약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이며 이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게 된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출애굽기 2:23-25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일하셔서 결국 모세를 선택하고 보내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탄절은 이와 같다고 본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은 만물과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오신 것이다.
하누카는 그런 고통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내딛었던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내어던지고 성전을 지켰던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는 바로 빛되신 예수이다. 하누카가 빛의 절기이다. 그 빛은 성전을 밝히는 것이며 성전의 등은 꺼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등이 껴져 있었다. 이방신들의 제사로 하나님의 빛은 꺼져 있었고 죄악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마카비는 유대인들 자신들의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에 회개하고 더렵혀진 하나님의 처소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다. 그에게는 빛이 보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향하여 나아갔고 승리할 수 있었다.
목동들은 밤에 천사를 만났고 빛을 만나고 빛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나섰다. 동방박사는 별빛을 따라왔고 결국 별빛의 인도로 왕을 영접하게 된다. 이 두 절기는 하나님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세번째로 회복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회복을 위함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 그분은 철저히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하누카는 회복을 의미한다. 성전의 회복, 예배의 회복, 그리고 헌신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의 회복과 철저한 순종을 향한 회복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지독하리만치 율법에 철저하려고 하였고 정죄하고 비난할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싶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모두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 속에 남아있는 전통 속에서 여전하다. 그리고 그 의미 또한 쉽게 지나치거나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욱 올바른 의미를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오늘 저녁 도너츠 하나 입에 물고 산타가 아닌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껏 웃어보면 좋을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