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넷째주] 그렇게 이끄셨다…

오늘 아주 귀한 모임에 초대되어 갔습니다. 음…초대라기보다는 불려갔다는게 더 맞을거 같네요. 현재 우리는 이스라엘에 있는 단체인 코너스톤이라는 단체에서 비자를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속은 현재 코너스톤인 것이죠. 이 단체는 약 120년 단체로 주도적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 Israel)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모임에 가게 된 것입니다. 불러간 것이지만 정말 잘 불려간 것입니다. 오늘 그 자리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전도자들과 사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호명되어지고 소개되는 단체나 개인들은 모두가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 그리고 팔레스타인들을 향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일들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아직 다 모인 것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더 많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에서 6년을 갓 넘기는 아직은 어린 사역자들입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말 오랫동안 이 땅에서 그리고 한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신 분들과 각자의 특기를 살려서 많은 영역에서 이 땅과 이 민족들을 섬기는 것을 들었을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지식적 사실적인 것들을 전달하는 이들이 있고 또한 복음으로 섬기는 이가 있습니다.

함께 중보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인 사역자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오늘 그 가운데서 특별했던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사하고 연구한 것을 책으로 펴낸 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믿는 유대인들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떠도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을뿐 정확한 통계나 자료를 제시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종종 이스라엘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자료에는 오류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인구를 분류할 때 종교적 분류로 인해서 메시아닉 공동체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고 대충 기독교인구수에 얼버무려지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소개된 이 한권의 책은 그동안 목말라 있었던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난 10년(1999년부터 2010년)까지의 조사내용과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까지 다양하게 담고 있었고 각 메시아닉 공동체들이 가지는 특성을 지역별 언어별 등으로 나누어서 세부적으로 조사하고 다루었다는 점에서 괄목한만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어서 읽고 분석해서 앞으로 기도하는 방향성과 또한 이스라엘을 알리고 나누는 것에 있어서 명확한 사실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모임을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하나님이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끄시는 방향을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큰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해사가 해와 별을 관측하여 방향을 잡고 조타수는 지시에 따라서 배를 이리저리 몰고 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처럼 지식이 없는 이들은 그저 똑같은 곳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것처럼 보입니다. 망망대해는 망망대해니까요. 어디로 가야 맞는 것인지는 오로지 항해사와 조타수만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KRV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운다고 할지라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방향성만큼 잘 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역할 당시 수많은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어떤 행사의 이름만 들어도 이건 어떻게 하면 되겠다라는 일명 “견적”이 나옵니다. 대충 비용도 생각할 수 있구요. 그렇다보니 이스라엘에서 가끔 행사하는 것을 보면 저건 이렇게 하면 될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이렇듯 사람일지라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그것을 가장 좋은 방향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인지를 알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편 23:3 KRV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언제나 우리가 중심이 되다보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안주시는 하나님께 불편함이 생깁니다. 우리가 생각했을때 좋은 방향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십니다. 의의길은 때로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항상 어렵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준은 조악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경험이나 깊이가 조악하기 때문입니다. 80년을 살아도 시간의 너머에 계신 하나님보다 더 깊은 지혜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말은 어찌보면 인간적으로 틀린 말은 없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욥의 고난은 분명 욥이 잘못한 것이 있거나 무언가 하나님께 심판받을 일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은 그런 정의로운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까닭없은 고난은 없다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욥은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은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그러셨으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또한 그리 석연치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친구들의 말을 받아들이자니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지만 그러면서 하나님의 불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욥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다보면 왜 그러셨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기자는 명확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나요?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라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왕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는 시종들을 거지같이 대하겠습니까?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다운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혹은 이끄셨다라는 말에 아직 완성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기에 그 나머지 길들을 이끌려 가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끄셨으니 더 멋진 것이 남았다는 기대감으로 잠시나마 들었던 저의 푸념과 불안이 사그러드는 오늘입니다.

싱글로 이스라엘 라투른 지역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사역하는 브라더 지그프리드는 큰 도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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