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3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그 친구는 현재 폴란드에 살고 있다. 약 8년전 한국을 떠나 폴란드로 취직하여 가게 된 동생. 수많은 고생과 역경 끝에 현재 꽤 괜찮게 살고 있다. 그런 동생 덕에 이스라엘에 살면서 폴란드를 몇차례 방문할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종종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올해에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올해 조금은 다른 일로 동생네를 방문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터진 후 2년동안 해외출입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제약이 많이 풀리게 되면서 큰 맘을 먹고 동생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다른 선교사님 커플과 함께 였다. 그 이유는 얼마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난민들이 폴란드로 많이 넘어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였다. 우리와 친한 우크라이나 선교사님도 이번에 폴란드로 넘어와서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함께 기도하고 소식을 듣고자 겸사겸사 방문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서 2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그 난민들은 집을 떠나야 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채 남의 나라에 와야 했다. 남편은 혹은 남동생이나 남자 형제들은 우크라이나에 남겨두고 떠나와야 했던 그들은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감히 상상이 안간다. 그 중 폴란드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2십만명이나 있다. 그들 중 우리 선교사님의 교회 성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교사님도 전쟁으로 인해서 교회를 떠나야 했던 아픔을 안고 또 성도들을 내버려 둔채 나와야 했던 미안함으로 인해서 맘에 큰 어려움을 갖고 계셨다. 어떻게든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한국에서 폴란드로 오게 된 선교사님은 여러방면으로 알아보고 노력하고 계셨다. 내 동생은 그런 선교사님을 돕고 있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나라이기에 여러가지로 어려운 나라이다. 법적이나 환경적으로 많은 일들이 낯설고 어려운 땅에서 내 동생은 너무나 큰 도움이었다. 그러나 과연 도움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면 생각이나 자세가 바뀌게 된다. 그러나 한 곳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 곳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곳이 모든 삶의 기준이 되게 된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한국이 기준이 되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사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그로 인해서 모든 것을 그 기준으로만 판단하게 된다. 폴란드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난민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집을 떠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가치관의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일 것이다. 기존에 살아왔던 모든 기준들이 더이상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통제되었던 환경을 떠나 통제되지 않고 확신할 수 없는 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혼란스러움만 남았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의 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하고 주저 앉는 것 밖에 없을 것이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난민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충분히 추스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럽고 힘들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고 다시금 돌아가려고 의지를 세우고 있었다.

선교사님은 그런 상황에서 피난온 성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미고 살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집을 알아보고 예배장소를 알아보고 기도하고 구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들을 내 동생과 함께 하나씩 준비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역도 열리고 있었다. 현지 폴란드 목사님을 통해서 지역 난민센터의 봉사길도 열리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민들을 섬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언가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결단 그리고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우연히도 이번 폴란드 행에서는 그런 선교사님의 사역 준비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정말 쉽지않은 기회였다. 폴란드에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센터 중 한 곳에 난민 아이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열기 위한 준비를 도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난민센터를 방문하고 사역적 준비를 도우면서 많은 것들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동생을 만나러 오랜만에 간 거였다. 2년동안 못만난 동생을 만나러 가게 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전혀 다른 시선을 만나게 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들의 안전한 공간에 살고 있다. 우리는 결코 누구도 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나름 자신의 삶을 통제 아래 두고 오늘 할일과 내일의 일들을 구상하고 이루어가고 있다. 난민이란 마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나 에티오피아 인들 그리고 시리아와 같은 전쟁을 치른 이들이 갖게 되는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가 난민일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폴란드 행에서 나는 난민이라는 것은 결코 전쟁이나 어떤 재해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그리고 느껴지는 환경이 그렇게 되었을때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선교사님이 그랬다. 한국인이고 나라도 그대로 있지만 그 분이 살았고 사역 했던 나라의 상황이 그대로 그분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분 스스로도 자신이 난민이 되었다고 하면서 혼란스러운 그리고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조금은 충격이었다. 우리는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에덴동산 이후로 오랜 시간동안 난민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처없이 떠도는 영혼이 된 것이 우리이다. 그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고 그 영혼들에게 너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선포하셨다. 영적 전쟁 가운데 난민으로 떠도는 우리가 정착할 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난민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알려주고 있는데도 그렇다고 확인시켜주는 대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민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크라이나 난민들 중에 난민 캠프에 남은 이들은 폴란드나 다른 나라에 연고나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이 남았다. 대부분들이 집시이거나 혹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다. 아니 진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탈출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탈출해서 나올 수 있었던 이들은 더 감사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이들도 있다. 전 국토가 전쟁에 놓여있으나 아직도 괜찮은 곳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망나온 이들은 위험한 지역에 있던 이들고 아직도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진짜 난민들은 누구일까?
누구도 난민이 될 수 있다. 전쟁 속에서 누구도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어도 난민이 될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속하고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잃어버렸을 때 난민이 되는 것이다. 나라를 잃어서가 아니라 민족을 잃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속한 것인지를 잃어버렸을 때 난민이 되는 것이다.

이번 폴란드 행에서 많은 생각들을 해 보았다.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어느 것부터 정리해야 할까도 고민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내 글을 읽던 이들 중 “네가 그 상황이 안되어봐서 모른다”라고 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꼭 당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지만 그 상황을 한발짝 물러섰을 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렇기에 난 한발짝 물러선 입장에서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말이 꼭 맞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민은 누구일까? 아니 나의 신분은 무엇일까? 그런 의문을 가진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피곤이 쌓여서 이틀동안 쉬고 있지만 다음주부터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적어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