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둘째 주 단상] 결핍은 필요하다

이스라엘로 돌아온지 벌써 3주가 되어갑니다. 돌아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주가 되었다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거 같습니다. 무언가 바쁘게 하다보면 시간을 화살처럼 아니 빛보다도 빠르게 지나가는거 같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나면 어느샌가 해가 광야를 넘어서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면 뭘 그렇게 했나 싶을만큼 더디가는 일들이 보일때도 있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지나서 벌써 3주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거 같습니다.

광야의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아침나절 광야의 모습

여러분들의 새해 1주간은 어떠셨는지요? 무언가 바쁜 일에 쫓겨 다니셨는지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일들의 시작으로 작은 흥분을 가지셨나요? 혹은 결심한 일들의 시작을 아직 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조급함이 있지는 않습니까? 저희 새해 한주간은 조금은 제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환경적 결핍으로 인해서 마음과 생각이 어지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곳에서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큰 무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롭게 커진 환경과 익숙하면서도 결코 완전히 익숙해질 수 없는 타지의 삶은 부담감과 함께 한주간 저를 짖눌렀습니다. 제 자신이 가진 나약함과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제 속의 본성이 저를 너무나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새로 이사간 집에 페인트 칠을 하면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페인트 칠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생긴 작은 불편함과 거스름이 저를 힘들게 하였고 그 결과 의도치 않은 짜증과 화를 반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 이사한 네게브의 집. 크지만 오래된 집이라 수리할 곳이 많았다.

일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저희가 새로 이사한 집은 조금 오래된 집입니다. 저희 동네 자체가 약 30년이 조금 넘는 동네이다보니 집들이 다 오래되고 낡았습니다. 더군다나 저희 전에 살던 친구를 자녀가 5명이고 집에 대한 관리를 소홀한 나머지 집안 구석구석 성한 곳이 별루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4개월을 있으면서 비워두었던 집은 먼지투성이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돌아와서 2주간은 먼지를 청소하고 집안을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청소가 된 후부터 더렵혀진 벽을 새로 칠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구멍을 메우는 일들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항상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에 복병이 드러나면서 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구멍을 메우면서 도데체 이집은 성한 구석이 어디인가 싶을만큼 구멍과 깨진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서리마다 안 깨진 곳이 없고 구멍과 벽에 생긴 이상한 상흔들은 제 손톱에 회석고가 마를 시간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곳을 채우고 평탄화를 한 후 페인트 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에서 난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벽의 페인트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에 칠했던 페인트들이 일어나고 벽에서 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벽 페인트를 벗겨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어난 부분만 하면 되겠지하고 시작하던 일이 점점 커지면서 벽의 한 부분을 거의 벗겨내게 되었습니다.

벗겨지기 시작한 벽, 긁어내니 점점 커지고 있었다.

벽이 점점 벗겨지고 새로 칠한 부분까지 벗져지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좋기만 하고 즐거웠던 일들이 점점 짜증섞이는 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벽을 긁어내면서 점점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벽이 그렇게 된 것이 속상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살게 된 집은 집세가 상당히 비싼 집이었습니다. 물론 집이 크고 규모가 있다보니 가격이 높았습니다. 하지민 크기와 활용도 면에서 저희가 생각하는 사역 방향과 맞았고 또 기도하는게 가운데 얻게 된 집이라 충분히 재정적인 채우심을 믿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그 가격을 주고 살게 된 집이 엉망으로 보여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이전에 살던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화가 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이 느끼던 재정적 압박과 값어치에 대한 일종의 번민의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정도 금액을 지불하고 살게 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내가 이걸 벗겨내고 있는거야?’

이런 생각들이 저로 하여금 원망과 불평 그리고 분노와 짜증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세를 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재정적 채움이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과 초조함이 더 큰 분노와 짜증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 기도하고 응답으로 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확실하게 보여주신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도 그 응답에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쁨으로 왔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적 제 자신 속에는 여전히 그 응답에 대한 불안과 현재의 재정적 상황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결핍과 불안이 저를 어떻게 흔들었을까요? 저는 흔들리고 불안하고 초조함으로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전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은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 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

마태복음 6: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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